1. 정비석이 각색한 또 하나의 초한지
저자 정비석은 1911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일본 니혼대학 문과를 중퇴, 귀국 후 창작에 정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시를 쓰다가 곧 소설로 전향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고,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자유부인, 여성의 적, 노변정담 등을 연재, 발표한 후에는 현대물보다는 주로 역사물이나 중국 고전을 각색해 글을 쓰는 일에 전념하게 됩니다.
1981년 장편 '손자병법'을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했으며, 1983년 장편 '초한지'를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하였습니다. 1988년 장편 '소설 김삿갓'을 발행한 후 1991년 숙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저서는 총 66권입니다.
이 책은 진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통제력을 잃게 되어 전국이 분열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역발산 기개세의 항우와 덕장 유방이 천하를 놓고 싸우는 와중에 여러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한번씩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소하, 장량, 한신, 범증, 팽월 등이 천하쟁패에 어떻게 관여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초한지는 기원전 200년 정도에 발생했던 일이며, 명나라 때 종산거사 견위가 집필한 '서한연의'가 원본이라고 하나 원저자와 저작물의 진위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2. 선정 이유 - 항우와 유방 스토리를 제대로 알자
평소 역사물에 관심이 많아 초등학생 시절 초한지를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생 시절 읽었던 삼국지의 경우 기억이 생생하고 오래 갔던 것과는 달리, 초한지는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분량만 많고 지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자주 초한지 속 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되곤 해서 '아 다시 한번 봐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소하와 장량, 한신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각기 캐릭터가 확실하여 어떤 상황이나 인물, 관계를 비유할 때 유용합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우리 대표님한테 소하와 같은 존재이다'라든지, '그렇게 수고하더라도 한신과 같이 팽당할 우려가 있다' 등입니다. 우리가 소하, 장량, 한신에 대해 잘 몰라도 대략 대화를 통해 그 문맥적인 의미를 유추할 수는 있겠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초한지는 정비석 외에도 이문열이 쓴 책이 있고, 일본 작가 요코야마 미쯔테루의 경우 만화로 초한지를 그려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 때 읽었던 책이 정비석 책이었기 때문에, 각 등장인물들의 특성이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책을 중고책으로 다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3. 감상평 - 다른 작가의 초한지가 궁금하다
정비석 초한지를 읽으면서, 중국 입장에서 초한지 스토리를 어떻게 그려내는지도 궁금하여 중국 드라마 초한지를 병행해서 보고 있습니다. 역사 드라마 특성상 다소 과장된 느낌의 연기들이 있지만 못참을 정도는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정비석 초한지는 실망스럽습니다. 아래에 그 이유를 열거하겠습니다.
1) 문체가 단순해서 읽기 수월하지만, 스토리 구성도 너무 단순해서 집중도가 떨어진다
- 이는 어쩌면 작가의 사족이 적어 굵은 스토리의 줄기만 파악하는데는 유리하겠지만, 사건의 전개들이 너무 비슷해서 집중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예를들어 유방이 경솔한 지시를 내리자 장량, 한신, 소하 등이 이를 막아서고 설득하는 전개는 몇번이나 등장하지만, 사건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게 획일적으로 그려냅니다.
2) 인물들이 너무 1차원적이다
- 다른 작가의 초한지도 읽어봐야 알겠지만, 너무나 유방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그려내다보니 항우, 한신 등은 단순히 나쁜 놈들에 지나지 않는 느낌입니다.
3) 불필요하게 선정적이다
- 여불위 관련 부분에서 불필요하게 19금 컨텐츠를 많이 넣어 이목을 끌려는 얕은 수가 보입니다.
정비석 초한지와는 별개로 인물들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평을 적어보겠습니다.
먼저 항우의 경우, 신화에 나오는 신비로운 존재인 느낌일 들 정도로 본인의 능력은 대단하지만(무력은 물론 지력 또한 꽤 쓸만해 보입니다), 그 지나치게 출중한 능력이 해가 된 인물이라고 봅니다. 유방의 경우, 우유부단의 끝판왕이라고 할까도 싶지만, 실제로는 표리부동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인배나 덕장을 표방하는 소인배라고 하겠습니다. 소하는 처세의 달인으로 요즘 말로 낄끼빠빠를 정말 잘 하는 능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장량은, 능력이 출중한 프리랜서로서 용인술. 외교의 대가입니다. 한신은 주군을 잘못만난 희대의 야심가로, 취업이 아니라 창업을 했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후에 기회가 되면 각 인물들의 행적을 세세하게 조명하면서, 인물 리뷰를 올리겠습니다.
이 책에 대한 평과는 별개로, 위와 같이 영웅 군상들의 행적을 보고, 그들 간의 관계와 사건들을 접하다보면 내 주변 인물들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나는 과연 우리 회사에서 어떤 인물일까' 하고 고찰해 보는 것만으로 이런 고전은 그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읽어본 지인의 평으로는 정비석 초한지보다는, 이문열 초한지가 낫다고 합니다. 여러 분들도 초한지를 읽으시려면 이문열 초한지를 택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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