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널리스트 헨미 요, 식과 생에서 삶의 근원을 찾다
헨미 요는 1944년생으로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시인, 소설가입니다. 그는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70년 교도통신사에 입사했습니다. 1996년 퇴사하면서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먹는 인간으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한 후 다양한 작품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저자는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자율적인 윤리적 갱생'의 길을 걷는 보기 드문 일본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자신을 향한 심문'으로 복귀해 다시 집필 활동을 정력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식(食)과 생(生)을 통해 보는 삶의 근원을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교도통신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저자가 1992년 말부터 1994년 봄까지 전세계를 두루 유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먹는 인간'이라는 주제로,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아픔이 있거나 위험과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15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활력있게 먹는 행위에 열중하는 사람들, 식욕에 굶주린 사람들, 전쟁의 공포에 식욕을 잃어버린 사람들 등 다양한 이야기와 기억을 담아냈습니다.
2. 선정 이유 - 평점 9.0에서 오는 일말의 기대
명작이라고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일본 작가의 책이라고 하여 별로 흥미가 없었던 책입니다. 그러나 네이버 평점이 9.0이나 되는 것을 본 후 속는 셈 치고 읽어보자는 마음과, 에세이 형식의 책을 오랜만에 읽는다는 기분으로 선택하였습니다.
3. 감상평 - 따듯한 시선으로 그려낸 웰메이드 탐방기
일본 작가의 책이라고 시큰둥했던 마음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 패잔병들이 필리핀에서 저지른 '인육섭취 사건'을 읽을 때까지도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마치 그곳 사람들을 '다 잊고 용서했다'는 식의 결말을 냈는데, 이 대목에서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내 가족들이 일본군에게 잡아먹혔는데 이를 잊고 용서할까요?
하지만 이런 제 오해는 책을 읽어가며 자연스럽게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는 저자에게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감명 받았습니다. 저자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의 삶을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찰하고 묘사하면서도, 그 바탕에는 인류를 향한 따듯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또 불쑥 불쑥 고백하는 자신의 편견, 오만함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세계 곳곳의 아픈 실상에 가슴 아파합니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나라 위안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을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나무라면서, 총리를 데려오라고 꾸짖는 할머니들을 상대하며 저자는 '난 전혀 일본이나 일본군을 대변하거나 대표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런 국적에서 오는 갈등을 떠나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할머니들이 삶을 극단적이며 비극적으로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며칠 동안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결코 자살로 생을 마감하진 말 것을 당부하고 당부합니다. 또 그들을 취재하며 마음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저널리즘의 인류애적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짐승은 먹이를 먹고 사람을 음식을 먹는다. 교양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 이는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였던 브리야샤바랭이 '미식예찬'에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도 가끔 짐승과 다름 없는 '먹이'를 먹는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가끔'에 대해 헨미 요는 자주 들려주는데, 잔반을 먹는 방글라데시 빈민, 필리핀 산속에서 인육을 먹은 일본군들, 쾌락은 죄이기에 살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만 먹는 코소보와 데차니 수도원 수도사들, 영양실조와 결핵으로 앙상한 나뭇가지 같이 마른 소말리아의 열네살 소녀,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달리 먹일게 없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우간단의 엄마와 아기, 군대 내 폭력을 통해 도망갔다가 복귀가 두려워 비누를 먹다 죽은 러시아 해군 신병,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났음에도 살기 위해 그곳의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체르노빌 사람들 등...
저자는 고매한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궁금해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집필 의도가 이처럼 명확하게 반영된 책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맨 처음 저를 언짢게 했던 필리핀 인육사건에 대해 곱씹어보니, 아마도 저자는 그 사건 자체의 비극성과, 일본이 전세계에 저지른 만행을 조명하고 이를 반성케 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뷰를 쓰다보니 다소 어두운 느낌으로 전달됐지만 분명한 것은 명작이라는 것입니다. 아프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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