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삼국지 강의(이중톈) - 역사의 심연으로 들어가다

Library_GOODMERCE 2021. 7. 2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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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스타학자 이중톈, 삼국지의 진수를 가르치다

저자 이중톈은 역사학자이며 사학자, 방송인입니다. 1981년 우한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샤먼대학 인문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오랫동안 역사학, 인류학, 심리학, 문학, 예술 등을 연구하며 탁월한 글을 써왔고, 다양한 인문학 분야를 섭렵하여 중국의 '新르네상스맨'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는 2006년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대중들에게 강의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일약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중국 고전의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평가되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1949년 사회주의 혁명과 낡은 문화를 없애자는 문화혁명, 개혁개방을 거치며 그들의 전통문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공격당하기 일쑤여서 소멸되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며 중국은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 때문에 중국 전통문화 복원에 박차를 가하는 사회 분위기, 사회상을 반영한 이중톈 같은 스타작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이중톈이 방송에서 강의한 '삼국지'강의를 묶은 것으로 '삼국연의'가 아닌 1차 사료에 철저히 근거하여 삼국시대를 설명하고 있으며, 남조 송대의 배송지의 주를 주요 사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설 '삼국연의'의 한계를 지적함과 동시에 소설이 갖는 매력도 함께 소개합니다. 또한 그간 삼국지를 연구한 역대 학자들의 견해와 연구성과까지 다양하게 담고 있습니다.

 

2. 선정 이유 - 소설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

중학교 시절, 이문열 삼국지를 탐독했습니다. 10권짜리 책을 10번 넘게 보았으니 질릴 법도 한데, 그래도 항상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삼국지에 대한 그런 관심, 열정은 대학생때까지 이어지다가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정사 삼국지를 보고 미지근하게 식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했던 인물과 감명받았던 사건들이 상당히 픽션이 가미되었다거나 심하게는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적잖이 실망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삼국연의를 포함하여 삼국지에 관련된 자료들은 자세히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급변하는 세상을 두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전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여러가지 고전들을 찾아보던 중 이중톈 선생의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사 삼국지는 각주가 없어 이해가 쉽지 않았던 반면, 이 책은 목차만 봐도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조명하고, 비중이 큰 사건들을 아주 깊게 파고드는 책이라고 생각되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정사 삼국지를 접하며 허탈했던 기억처럼 이번에도 다소 실망할 수 있겠지만, 혹시 내 어릴적 보물상자에서 건질 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3. 감상평 - 전설같은 영웅담이 아닌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

삼국연의를 재미있게 읽은 분이라면, 자신있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삼국연의를 즐겨본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팩트체크를 해주면서도, 소설과 사실의 괴리에 그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독자들에게 또 다른 삼국지의 매력을 선물합니다. 

그 매력이란 바로 '현실성'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삼국연의를 그토록 좋아했던 것은 비단 그 스토리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역사에 기반한 이야기이면서도, 가끔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이야기들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소설 삼국연의를 보면, 등장인물들은 그야말로 '영웅'이며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들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들도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완벽한 줄 알았던 제갈량도 잘 못하는 것이 있었고, 아무 것도 못하고 그저 '귀 큰놈'이라고 치부했던 유비가 생각보다 능력있는 리더였다는 사실을 이 책은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제가 이미 소설, 영화같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믿기에 나이가 들어버렸거나,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영웅들을 마치 우리 주변에 실존하는 현실적 인물들처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실성을 깔고, 그들의 행적을 바라보니 그 일들이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나라면 과연 그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하고 이입해 볼 수 있는 사건들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주요 사건들과 주요 인물들에 대해 세세히 조명하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인물은 '가후'입니다. 삼국연의에서 가후는 다소 사악한 모사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통해 재조명 되는 그는, 비현실적으로 능력이 출중한 현실주의자 책사입니다. 그는 조조를 만나기 전까지 본의 아니게 주군을 2명이나 따랐지만, 그때마다 주군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누구를 따르더라도 배신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또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의 진가를 조조는 잘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맏아들까지 죽게한 장본인인 가후를 책사로 맞이하여 평생 곁에 두게 됩니다.

 

가후가 대단한 점은 그가 낸 신묘한 계책들도 있지만, 그의 처세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본분은 최선을 다하되,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훗날 조조가 후계자를 두고 고심할 때, 가후도 여느 중신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는 그때 장자인 조비가 선택되도록 우회적으로 도와주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이유로 '정치 싸움'에서 한발 피합니다. 가후는 그가 겪은 인생의 항로에 비해 삼국지 시대 인물들 중에는 이례적으로 천수를 누리다가 죽습니다. 가후의 생을 보면서 공자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 주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않는다'. 자기 PR시대를 살아가고, 뒷담화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새겨야할 말인 것 같습니다. 

 

또 의외의 인물은 '여몽'입니다. 여몽은 관우를 죽였다가 관우의 원혼에 의해 몸에 구멍이 나 사방으로 피를 쏟으며 죽은 그저 그런 장수로 삼국연의는 묘사하지만, 실제 여몽이야말로 자수성가한 대기만성형 장수입니다. 한번은 손권이 용맹하지만 무식하기로 유명한 여몽을 찾아가 책을 왜 멀리하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여몽은 나라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언제 책을 보느냐고 반문했고, 이에 손권은 '군주인 나도 책을 보는데, 네가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못 보느냐.'는 일침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 뒤 여몽은 마음 깊이 반성하고 엄청난 독서가로 변신합니다. 그래서 그의 실력과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갔고, 결국 이를 재평가한 노숙에 의해 천거되어 중앙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몽은 대기만성형 자수성가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인물입니다.

 

삼국연의 인물들의 다양한 매력과, 역사적 사건 속에 숨어있는 정치적 관계, 시대적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단 삼국연의를 읽지 않은 분들에게는 많이 지루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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